제 762 호 [교수사설] 지역과 함께 하는 대학의 새로운 사명, USR(대학의 사회적 책임)
대학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가? 강의실에서 오가는 지식, 연구실에서 축적되는 성과,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만으로 오늘의 대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대학의 중요한 책무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 인구 감소, 지역 소멸, 청년 유출, 고령화, 산업구조 변화와 같은 복합적 위기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과 같은 낭만적인 고립이 더 이상 미덕일 수 없으며, 대학은 자신이 뿌리내린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어떤 책임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시대의 요구 앞에 서게 된다. 대학 바깥에서 벌어지는 이 거대한 문제들은 어느 특정 기관이나 국가의 힘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대학 역시 그 해결의 주체에서 비켜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USR(University Social Responsibility), 곧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우리 사회에 정착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공적 기관인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약한 편이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일찍이 이러한 책임을 인식하고 대학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여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를 형성해 왔다. 1990년 세계 22개 대학 총장들이 프랑스 탈루와르에 모여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언(Talloires Declaration)을 채택했고, 이후 미국 위스콘신대학은 ˵교육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 개개인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념(Wisconsin Idea)을 대학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코넬대학은 캠퍼스를 리빙랩(Living Lab)으로 전환해 에너지 방출을 15% 감축하는 성과를 거뒀고, 룩셈부르크대학은 지역사회와의 소통 플랫폼으로서 다학제적 공동연구를 실천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영국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기여도를 반영한 '세계대학 영향력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대학이 자리한 천안을 돌아보게 된다. 천안은 충남의 핵심 도시이자 다양한 산업, 청년, 외국인 주민, 생활권 문제가 교차하는 곳이다. 지역의 성장은 곧 사람의 정주와 연결되고, 정주는 교육과 일자리, 문화적 포용과 공동체 경험 위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천안은 단순한 교육 소비지가 아니라, 우리 대학이 함께 성장해야 할 공동체인 것이다. 2015년 미국 NorthStar 컨설팅 보고서는 주 정부가 위스콘신대학(UW–Madison)에 1달러를 투자하면 주 경제에 24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학의 발전은 지역의 발전과 같이 간다'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실증된 현실인 것이다.
그 구체적인 출발점은 이미 캠퍼스 안에 있다. 교수의 연구가 지역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실이 되고, 학생의 과업이 지역의 일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될 때, 대학은 비로소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다. 대학은 지역 위에 세워진 기관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기관이다. 지역사회가 약해지면 대학도 결국 약해진다. 반대로 대학이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순간, 대학은 다시금 필요하고도 믿을 만한 공적 기관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의 크기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대학의 쓰임을 증명하는 일이다.